무화과 나무를 예수님이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든 무화과 나무가 열매가 없었던 것인데 왜 하필 잎이 있는 나무만 저주받아야 했을까요?
답변:
이 무화과나무는 겉으로는 열매 있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만 정작 열매가 없는 유대 민족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기도하고 아침에 다시 성전에 오셨습니다.
도중에 그분은 무화과 밭을 지나셨습니다.
그분은 시장하셔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 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이때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무화과가 익을 계절이 아니었으며 예루살렘 주위의 고원에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나신 과원에는 다른 모든 나무보다 일찍 된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벌써 잎사귀들이 무성했습니다.
잎이 나기 전에 익은 열매가 나오는 것이 무화과나무의 특성입니다.
그러므로 잎이 무성한 이 나무는 잘 익은 열매가 있음을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외모는 기만적이었습니다.
제일 낮은 가지로부터 제일 높은 가지까지 다 찾아보셨으나 예수께서는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은 가식적인 무성한 잎사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나무에 말라죽게 하는 저주를 발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님과 제자들이 다시 그 도시로 들어가는 도중에 시든 가지들과 떨어지는 잎들이 그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그리스도의 행위는 제자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에게는 주님의 방법과 행위와는 다른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당신들을 통하여 세상이 구원 얻게 하려고 오셨다고 하시는 말씀을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 함이 아니요 구원하려 함이라”(눅 9:56)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분의 놀라운 행위들은 회복을 위한 것이었지 결코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분을 회복시키는 자, 곧 치료자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행위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의아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애를 기뻐하”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미 7:18; 겔 33:11).
멸망시키는 일과 심판을 통고하시는 일은 그분께 “기이한”(사 28:21)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미래의 베일을 거두고 사람들에게 죄악의 길의 결과를 나타내심은 자비와 사랑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행동화된 비유였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면전에서 무성한 잎사귀로 의기양양하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유대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
구주께서는 이스라엘의 파멸의 원인과 확실성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무에게 도덕적 특성을 부여하여 거룩한 진리의 해설자로 삼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고백함으로 모든 다른 민족과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총애를 받아왔으며 다른 모든 백성보다 의로움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고 이득을 탐함으로 부패하였습니다.
그들은 지식을 자랑하였으나 하나님의 요구에는 무지하였고 위선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열매 없는 나무와 같이 그들은 거만한 가지들을 높이 뻗고, 외모로는 화려하고 눈에는 아름다웠으나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장엄한 성전과 신성한 제단, 관을 쓴 제사장들, 인상 깊은 의식들을 가진 유대인의 종교는 과연 외모로는 아름다웠으나 겸손과 사랑과 자비는 부족하였습니다.
무화과 과원에 있던 모든 나무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잎사귀가 없는 나무는 아무런 기대도 일으키지 않으며 실망도 안겨주지 않습니다.
이 나무들은 이방인들을 대표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은 경건한 체하는 유대인들과 같이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하다고 거만하게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과 방법에 어두웠습니다.
그들에게는 무화과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광명과 희망을 가져올 날까지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더 큰 축복을 받은 유대인들은 이 선물을 남용한 데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였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특권들은 그들의 죄를 증가시킬 뿐이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다면 그 자체가 저주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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